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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일어나서 가자 1
강태근
소설
신국판/204쪽
2020년 1월 30일
979-11-5860-731-9(04810)
13,000원

□ 작가의 말

 

아픔도 가꾸면 반짝인다

이 소설은 장편 『잃은 사람들의 만찬』과는 또 다른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며, 나의 해원(解寃)의 간증이다.

나는 한 광신도가 휘두른 광기 어린 칼날에 삶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는 유신정권의 연장 수단으로 제정된 교수재임용법의 흉기를 들고 무참하게 나와 가족의 삶을 난도질하여 고통의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그 22년의 질곡의 세월 동안, <세상은 오히려 종교가 없어져야 세계 평화가 올 지경으로 종교 때문에 인간 삶이 피폐해져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자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로버트 피시그’의 이 말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지금 이 나라는 또 어떠한가? 세월호 참사가 난 이래, 헌정 사상 유례없는 대통령 탄핵 사건을 겪으면서, 대한민국을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다른 나라를 만들겠다고 정치인들의 약속이 쏟아졌다. 그때의 다짐과 약속은 얼마나 지켜졌고 얼마나 달라졌는가?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고 아무것도 제대로 바뀐 것이 없다. 북미회담과 남북문제와 정쟁으로 나라는 여전히 혼란 속에 신열을 앓으며 미로를 헤매고 있다.

<조선 사람들은 화를 잘 낸다. 모욕을 당하면 곧 팔을 걷어붙이고 일어난다. 그러나 그 성냄이 얼마 안 가서 그치고 만다. 한번 그치면 죽은 뱀처럼 건드려도 움직이지 않는다.> 량치챠오(梁啓超)가 ‘조선 멸망의 원인’이란 글에서 우리 민족성을 비판한 말이다.

달라져야 한다.
아픔도 가꾸면 반짝인다. 이제 일어나서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횃불을 들자. 새벽이 오려면 어둠이 더 짙은 법. 새벽은 분명 우리 민족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다.

 


□ 발문

 

[발문]

한 작가의 새로운 경계
-강태근 장편소설 『잃은 사람들의 만찬』에 부쳐

김종회
(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강태근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경희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강의실에서였다. 필자에게는 학과의 직속 선배이긴 하나 연령의 차이로 함께 학교를 다닐 기회가 없었고, 어렴풋이 소싯적부터 알려진 그 문명(文名)을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강의실에서의 그는 늘 성의 있고 진중하였으며, 후배들이 보기에 후덕한 맏형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의 은사이자 필자에게도 그러한 고(故) 황순원 선생께서는 그를 특별히 사랑했다. 경희대에서 역사상 가장 오랜 권위와 전통을 가진 전국고교문예 현상공모에서, 그는 황 선생의 선(選)을 받았다. 그에 뒤이어 1968년 문예장학생으로 경희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황 선생의 문하에서 1988년 박사학위까지 모두 마치고 대학 강단으로 출발할 때, 황 선생은 정성어린 추천서를 써주었고 심지어는 백지에 도장만 찍어 추천서 문안을 위임하는 신뢰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강 작가는 스승의 복이 많은 사람이다.
일찍이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여 대전 보문고에 진학했을 때, 그는 고교 재학생으로서 제1회 대한민국 학술문화예술상을 수상하는 등 일찍부터 문학적 재능을 드러냈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의 품성이 신중한 만큼 소설 또한 과작(寡作)이었다. 학위를 마친 후 여러 대학의 소설 창작 및 소설론 강의를 맡고 있으면서 스스로의 창작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예순 중반에 이른 지금도 고려대학교 교수로 적을 두고 있으면서 여전히 현역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동안 4인 창작집 『네 말더듬이의 말더듬기』와 개인 창작집 『신을 기르는 도시』 등을 상재한 작가 강태근의 소설 세계는, 인간의 외형과 내면이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고 보고 그 본질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경향이 약여하다. 특히 정신의학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여러 병리학적 상황은, 근원적으로 사회·역사적 사건과 상관되어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기에 작가로서 그의 시각은 그 부정적 면모에 대해 침묵하거나 후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선다.
그런가 하면 전통사회의 가부장적 질서 또는 아버지의 상실이라는 주제가 소설적 담화로 어떻게 표출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깊어 보인다. 이는 우리 민족 전래의 강건한 선비정신, 곧 유학의 정명주의(正名主義)에 잇대어져 있는 것으로, 문학을 통해 사회 고발이나 사회적 실천의 영역으로 전환될 수 있는 모티프를 포괄한다. 그가 몸담고 있던 사학 재단과의 갈등으로 오랜 세월을 그 현장과 거리와 법정에서 투쟁해온 사실이 그의 소설 세계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말이다.
미상불 이 투쟁의 기간을 통하여, 그는 많은 것을 잃거나 유보 당했고 그만큼 심정적 고통도 극한의 지경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하여 어쩌면 인간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위의나 정신적 가치와 같은 덕목은, 그 체험이 없는 경우에 견주어 훨씬 큰 진전과 승급을 이루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에 새 얼굴을 보이는 장편소설 『잃은 사람들의 만찬』은 바로 이 사건에 대한 가슴 아픈 자전적 기록이다.
이 소설의 강청은 작가 강청의 심경과 행적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 작중인물이 작가와 동일하지는 않다. 그것은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의 존재양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강청이 작가의 절망과 울분, 그 진정한 소망을 담아내기에는 부족하지 않다. 모두 3부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의 카타르시스이자 작가의 오래 묵은 육성으로 유사한 사건들에 대해 환기하는 비판의 경종이다. 우리는 한 작가의 생애를 담은 이 소설적 서사를 유의 깊게 성찰해야 할 책무를 넘겨받은 셈이다.
주인공 강청은, 마오쩌둥 사후 중국 문화대혁명 기간에 숙청된 4인방의 우두머리 강청과 이름이 같다. 마오의 세 번째 부인이기도 했던 그의 몰락이 작가에게 어떤 시사점을 던졌는지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중국의 강청 못지않게 이 소설 속의 강청도 사회·역사적 인물로서의 비중을 가졌다. 필자가 바라기로는, 이 소설로 인하여 강 작가가 자신을 금압했던 오랜 굴레를 벗어던지고, 저 해맑았던 소년 수재(秀才)의 초심을 회복하여 더 유암(柳暗)하고 화명(花明)한 창작의 경계를 열어갔으면 한다.

 

 

□ 본문 중에서

 

1

‘『바알의 만찬』 아니야, 이 제목은! 일반 독자들에게는 너무 생경해!’
강청(姜淸)은 교정본 원고에서 눈을 떼고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밖은 아직 한겨울이다. 연구실 북쪽 창문과 마주하고 있는 뒷산의 소나무들이 며칠 전에 내린 폭설을 뒤집어쓰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평년 기온 같으면 벌써 강추위가 물러설 때다. 그런데도 겨울은 이월의 끝에서 여한을 풀지 못한 원귀처럼 앙탈을 부리며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바람까지 매섭다. 봄은 그 서슬에 동(冬)장군의 눈치를 살피며 연신 헛기침만 해대고 있다.
강청은 다시 인터넷에서 발췌한 ‘바알’에 대한 주석을 살핀다.

바알(Baal)은 주(主)라는 뜻이며 농업공동체였던 고대 가나안인들이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 숭배하던 풍요와 폭풍우의 남성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최고의 신인 엘(El), 어머니는 바다의 신 아세라였다. 하지만 가나안의 특징 때문에 엘보다는 바알이 숭배되었다.

구약성서에서는 바알신앙과 야훼신앙이 경쟁관계였음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들(엘리아 예언자와 바알의 예언자들 간의 갈멜산에서의 내기)이 나온다. 이와 관련하여 야훼신앙은 목축국가에서, 바알신앙은 농경국가에서 숭배되었다는 점에서 농경문화권과 목축문화권의 대결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후 야훼 신앙과 대립한다는 이유로,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바알이 마왕이나 악마, 지옥의 군주 등 사악하고 타락한 존재로 묘사되어왔다.

강청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바알! 그가 바알인가, 내가 바알인가! 그의 관점에서 볼 때는 내가 바알이 아니었던가. 그 때문에 나와 내 가족은 20여 년 동안 생존의 끈을 붙들고 처절하게 신음하지 않았는가. 2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분명한 것은, 그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고, 나는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질곡의 세월을 소설로라도 해원(解寃)하지 않고서는 심화(心火)를 다스릴 수 없어 이 작품을 쓴 것이 아닌가.
강청은 착잡한 심경으로 다시 교정본의 원고를 훑어 내려간다.

작가의 말 / 2

 

그 해 겨울 / 8

달리다굼 / 60

오산리의 봄 / 88

지루한 여름 / 124

 

[발문] / 200

한 작가의 새로운 경계

-강태근 장편소설 『잃은 사람들의 만찬』에 부쳐

김종회(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강태근

 

1948년 논산시에서 태어났다.

고교 재학 시 제1회 대한민국 학생예술문화상을 수상하고 경희대학교 국문과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하여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2학년 때 황순원 선생님의 추천제의를 사양하고 추천제도의 관행에 식상한 문우들과 무크지 활동을 하다가 후에 계간문예지 문학마당을 창간하였다. 군 복무 시 국방부주최 광복30주년기념 현상소설모집에서 김동리 선생님의 선으로 작품 고향이 당선되기도 했다.

 

고려대학교 인문학부 교수, 대전시립문학관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위원을 역임하고 한국문인협회회원,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한국작가교수회의 회원, 해직교수협의회장으로 활동하며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작품집으로 장편소설 잃은 사람들의 만찬, 신을 기르는 도시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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